Traditioal Requior Story 삼국시대 우리 술 : 술은 마시는 게 아닌 먹는 것

약과 음식은 근원이 같다는 약식동원(藥食同源)이라 하여 술도 식사 중 반주로 곁들이며 과하지 않게 먹으면 약이 된다고 했다.
조용수 | cooknchefnews@naver.com | 입력 2018-06-24 00:4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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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우리에게는 ‘밀주’라는 단어를 사용하던 가슴 아픈 시절이 있었다.그 때는 동네 어귀에 단속 나온 국세청 직원들이 나타나기라도 하면 온 동네에 한바탕 소동을 벌어지기도 했다. 누군가는 항아리를 머리에 이고 이리저리 감출 곳을 찾아 돌아다녔고, 행여 단속에 걸릴까 노심초사하며 퇴비 속에, 툇마루에, 뒷간에 이리저리 감추던 시절이었다. 이것이 밀주단속이 만들어낸 웃지 못할 광경이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가슴조이며 술을 빚었다.

writer _ 최덕용 셰프(한국전통주문화연구소 소장)


Traditioal Requior Story
 
간략하게 살펴보는 전통주의 역사 
삼국시대 우리 술
 

 

이제는 추억이 된 밀주 단속은 88올림픽을 치르고, 우리 술 문화에 대한 이야기들을 논하면서 1995년 밀주단속법이 폐기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제야 1909년 일제에 의해 금지되었던 가양주(家醸酒)가 다시금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역마다 집안마다 다양하게 빚던 가양주문화가 사라진 지 오래되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고구려 건국담에 술에 얽힌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우리 민족 술의 역사는 3000년 넘게 우리네 삶과 함께한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술은 마시는 게 아닌 먹는 것

조선시대에는 어디서나 다양한 비법으로 빚은 훌륭한 가양주문화가 있었고, 명절 때 차례를 지내거나 제사를 모실 때도 집안의 전통비법으로 빚은 술로 예를 올리는 것이 풍습이었다. 우리 조상들은 ‘술을 마신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술을 먹는다’고 표현하며 술을 단순한 음료가 아닌 하나의 음식으로 여겼다. 또한 약과 음식은 근원이 같다는 약식동원(藥食同源)이라 하여 술도 식사 중 반주로 곁들이며 과하지 않게 먹으면 약이 된다고 했다.

 

이러한 좋은 전통인 가양주문화는 일제에 의해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일제의 의도는 뻔했다. 그들은 세금수탈을 목적으로 가양주 문화가 자리에 일본의 기술과 양조제법을 이식시키는 정책을 폈다. 양조장을 세워 주세를 받으며 술이 필요하면 사서 마시도록 했던 것이다. 결국 가양주 문화는 밀주 단속이라는 그럴듯한 명목으로 통제되면서 몇몇 사람에 의해 남모르게 명맥을 유지했을 뿐 대부분이 사라져버렸다.


필자는 이런 소명감을 갖고 20여 년 전부터 우리 술을 전통방식으로 연구하고 빚어왔다. 늦은 감은 있지만 이제라도 우리 술 가양주 문화를 보급하고, 우리 술의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단지 술을 복원하는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화를 되살리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에 지면을 통해 우리 술의 역사와 다양한 전통주의 세계를 독자들과 나누려 한다.  


우리 술의 기원과 문화
우리 술의 기원에 관한 몇몇 주장이 있지만 그중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은 민족의 형성과 더불어 원시생활이 시작되면서 자연 발생적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당분이 많은 과일이나 곡류에 어느 순간 야생 곰팡이와 효모가 우연히 달라붙었을 것이다. 당연히 곰팡이와 효모는 거기서 생육하여 알코올이 생성된다. 이를 당시 사람들이 역시 우연히 맛보았을 것이고, 별 탈 없을 뿐만 아니라 기호에도 맞고 기분을 좋게 했을 것이다. 아마 그 이후 사람들은 곡물에 곰팡이를 번식시킨 것, 즉 누룩에 익힌 곡물과 물을 첨가해 직접 술을 빚어 마시게 되었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쌀 문화권인 우리 민족에게 쌀을 빚은 술들이 발달되어 전승된 것은 쌀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 문화와 깊은 관계가 있다. 세계 각국의 대표 술을 살펴보면 대부분 그 나라 기후와 풍토에 적합하다. 그리고 가장 많이 생산되는 농산물을 술의 주원료로 삼는다. 영국의 위스키나 독일의 맥주는 보리와 홉을 주로 사용하고, 프랑스의 와인과 브랜디의 경우는 포도를 주원료로 한다. 데킬라는 멕시코의 민속술인데, 주원료는 선인장의 일종인 용설란(龍舌蘭)이다. 이들 모두 그 나라의 대표적인 작물이거나 자연식물이다. 우리나라는 5천 년 동안 농경사회가 유지된 농경국가다. 때문에 쌀을 술의 주원료로 삼은 건 당연한 일이다. 
 


삼국시대우리 술
삼국시대 이전 우리 술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고삼국사기(古三國史記) 중 고구려 동명성왕 건국담에 소개된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에 대한신화에 등장하는데, 보통 우리 술의 태동기를 삼국시대로 보기 때문에 그 시대부터 다루려 한다.


먼저 삼국사기(三國史記) 고구려본기를 살펴보면 대무신왕(大武神王) 11년(AD28년)에 ‘지주(旨酒)’라고 하여 ‘맛 좋은 술’이라는 뜻을 가진 술 이름이 등장한다. 그리고 삼국유사(三國遺史)에 ‘미온(美醞)’이라는 술 이름도 보인다. 위지(巍志)의 고구려전에서는 우리나라 술에 얽힌 신화를 소개하면서 제조기술이 상당히 발달했다고 전한다. 또한 지주를 빚어 한나라의 요동 태수를 물리쳤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로 보아 술 빚는 기술이 상당히 발달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태평어람(太平御覽)에는 고구려 여인이 빚은 곡아주(曲阿酒)가 강소성(江蘇省) 일대에서 명주로 알려졌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일본의 고사기(古史記) 응신조(應神條)에는 양주법을 아는 명인 인번(仁番) 등이 왕래하여 수수보리(須須保理)로 빚은 술을 바쳤다는 내용과 본조월령(本朝月令) 6월령에 응신천황 때 수수보리가 참래하여 조주(造酒)가 처음으로 시작되다는 내용을 찾을 수 있다. 이를 근거로 당시 조주법은 대부분 쌀로 빚었으며, 백제의 양조기술이 일본에 전해졌다고 볼 수 있다.


당시 농사는 이미 벼농사 위주로 개편되어 관개공사를 추진하는 등 농업기술 증진책이 주요 국가사업이었다. 농가들은 보리, 밀, 조, 기장, 수수, 콩, 팥, 녹두 등을 재배하였고, 찹쌀의 산출량도 상당했다. 그리고 당시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밀이 우리나라에 정착되었고, 그 농사법을 다시 일본으로 전했다. 그 시기가 3세기 경인 것으로 미루어 짐작건대 삼국시대 초기에 밀의 다양한 이용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추측 또한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삼국시대에는 밀로 만든 누룩과 찹쌀을 주원료로 하여 술을 빚었을 거라는 주장이 상당한 설득력을 얻는다.

[Cook&Chef 조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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